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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에이시로(安部栄四郎)와 이즈모 민예지(出雲民藝紙)

이즈모 지방의 종이뜨기는, 예전부터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200년정도 전의
이즈모의 종이가, 나라의 쇼소인보물(주:일본 나라현에 위치한 왕실의 보물 창고)의
하나입니다. 제일 활발하게 종이뜨기가 이루어진 것은 에도시대로, 초대의
마츠에번(주:에도시대의 지역의 단위)영주 마츠다이라 나오마사(松平直正)가, 월전의
나라(지금의 후쿠이현)에서 종이뜨기 장인을 불러들여, 종이뜨기의 장을 세워 힘을
쏟았습니다. 야쿠모무라(八雲)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에도시대 중반부터 종이뜨기가
행해져, 이 지구에도 30건의 가게에서 종이뜨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쇼와 초기까지
성하게 이루어졌으나, 기계제지의 도입으로 그만두는 가계가 많아지며 지금은
2건(2011년 현재)의 가게만이 남아있습니다.
아베 에이시로는, 메이지 35년(1902년)에 이와사카무라(岩坂村,현재 마츠에시
야쿠모쵸)의 종이뜨기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잇달아 종이뜨기 장인들이
그만두어갔지만, 아베 에이시로는 좋은 종이는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믿어, 전통을
지켜나갔습니다. 쇼와 43년(1968년) 안피지를 뜨는 기술을 인정받아, 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인간국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중국에서도 개인전을 열어 손으로 뜬 전통일본종이의 튼튼함이나 아름다움을
알렸습니다. 쇼와 59년(198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은
손자인 신이치로(信一郎),노리마사(紀正) 형제가 후계자가 되어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즈모 민예지(出雲民藝紙)의 역사

이즈모 종이의 역사는 오래전의 덴표시대(天平時代,주:일본 제45대 황제의 연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것은 쇼소인문서의 “사경간지해(写経勘紙解)”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뒤로 쇠퇴하여 재차 획기적발달을 이룬것은 에도시대 입니다.

에도시대의 이즈모 종이

근세에 들어서 이즈모 종이의 기원은, 에도시대에 들어서 마츠에 초대영주 마츠다이라
나오마사가, 고향인 월전의 나라에서 사람을 불러 마츠에시교외의 노시로(野白)에
지물포를 세운것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닥나무 재배의 장려와 함께 종이뜨기는 번의
전매사업으로써 발전되었습니다. 이어서 나오마사의 자손 긴에(近栄)가 자신의
영지인 노기군 히로세쵸 오지다니(能義郡広瀬町祖父谷)에 마츠에번에서 종이뜨기의 공인을
이주시켜 지물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의 이즈모 종이의 대표적인 물건으로써 노시로종이 외에, 히로세쵸의
오지다니(祖父谷)종이, 인다 지방의 마바세(馬ばせ紙)종이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금의 시마네현의 세키슈(石州)지방의 하마다(浜田)번에서도 활발히 종이제작이
장려되었습니다. 다만, 하마다번은 민간에 적극적으로 종이만들기를 장려했었지만,
마츠에번은 상업제작을 전문으로 했습니다.
마츠에시 야쿠모쵸 별소(別所)지구의 종이뜨기 기술은, 에도시대 말기 이 오지다니의
초지기술을 배운것이라고 합니다.

메이지 이후의 이즈모 종이

메이지유신후, 마츠에번의 통제에서 자유가 된 이즈모 종이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메이지 전기에는 밀짚종이, 짚종이 붐이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수요를 바탕으로
조제관조만으로 붐이 일어났기에, 붐이 쇠퇴한 메이지 후기에는, 실추된 신용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또한, 신흥기술인 양산의 기계제지라는 경쟁상대를 만나, 서서히
쇠퇴해 갔습니다. 별소지구의 종이는, 마츠에번의 용뜨기의 노시로종이의 숙련된
전통기술도, 그 후, 그 기술을 구사한 겸가한 개량지도 소위 이즈모 종이의 대세에서
떨어진 곳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별소지구는, 산과 산 사이의 계곡지이기에 재배지가 적어서,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부업으로써 종이뜨기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종이의 산지로써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메이지 32년과 33년에 토사에서 사람을 불러, 기술개량을 행하거나 지구내에서
제지원료구매를 목적으로 한 조합을 설치하는 등의 사업을 행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후의 이즈모 민예지 탄생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지구가, 이즈모 민예지의 산지로써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베 에이시로의 개인의 매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즈모 민예지의 탄생

아베 에이시로는, 메이지 35년(1902년) 1월14일, 시마네현 야츠카군 이와사카무라
별소(島根県八束郡岩坂村別所,현재 마츠에시 야쿠모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베는,
어릴적 부터 가업의 종이뜨기를 도우며, 종이뜨기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야쿠모쵸는,
이름높은 종이뜨기 산지는 아니기에, 아베의 수행은 자발적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21살 때, 아베는 시마네현 공업시험장 지업(紙業)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각종 종이뜨기 방법을 시험해보며 기술을 연마하고, 후에는 시마네현하의
종이뜨기 장인들을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그러한 활동이 활발했던 쇼와6년(1931년), 민예운동을 제창하기 시작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일본의 미술평론가)가 마츠에를 방문하여, 아베가 뜬
안피나무의 두꺼운종이를 보고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종이다”라고 칭찬한것이
기연이되어, 아베는 민예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베는, 민예운동의
염직,도예,판화 등의 동료들에게 힘을 받아 기술을 단련하면서, 일본종이의 제맛을
죽이지않고 살려서 염색한 화염지(和染紙), 물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살려 섬유를
섞어뜨는 모양지(模様紙),닥나무, 삼아, 안피등의 식이섬유의 특색을 잘 살려 따로 뜬
수많은 기스키종이(生漉紙)를 발표했습니다. 후에 아베가 뜬 종이는 “이즈모 민예지”로
통칭되어, 전국에 열렬한 애호자가 생겨났습니다.

이즈모 민예지의 발전

아베는,기술에 빠지지 않고 항상 일본종이의 제맛을 현명히 살려가며, 지금까지의
일본종이의 역사에 없었던 독자적인 개성을 할휘한 수많은 명지를 창출했습니다.
아베의 종이는, 여러가지 기술이 쓰여져있으면서 식이섬유의 특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유의했기 때문에, 닥나무 종이는 닥나무 종이답게, 안피 종이는 안피 종이답게
세고 당당하여, 소위 남성적인 매력이 넘칩니다.
아베는, 쇼와35년(1960년)부터 3년간, 쇼소인보물 중에서 천년이 넘게 보관되어 온
종이에 대하여, 일본종이 연구가인 주가쿠 분쇼(寿岳文章, 일본종이 연구가) 외 여럿과
함께 조사연구를 행하여, 일본종이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쇼소인보물지를 복원하여
뜨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쇼와 43년(1968년), 아베는 문화청에서 안피 종이를 뜨는 전통적기술을 높이
평가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속히 이르는 “인간국보”인 것입니다.
쇼와 9년(1934년) 도쿄에서, 한 종이뜨기 장인이 뜬 종이만으로 한 회당을 장식한
“일본종이의 개인전”이라고 하는, 일본종이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도를 행한 이래,
쇼와 59년(1984년) 12월 18일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베는 매년 각지에서 전람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쇼와49년(1974년) 가을에는, 국내 활동을 비약하여 파리에서
일본종이 개인전을 열어, 이후 쇼와 55년(1980년)까지,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북경 각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아베는, 일본종이는 단순히 소모품에 지나지않으며, 그 위에 그림이 그려지면서
처음으로 완성품이 된다고 하는 일본종이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는 생각이나
누가 종이를 떠도 똑같다고 하는, 종이뜨기 장인의 기술을 우열하게 보거나
지방적특색을 인정하지 않는 생각, 혹은 기계생산이전의 시대에 뒤떨어진 유치한
기술이라고 보는 생각 등, 당시 사회의 상식적인 일본종이에 대한 견해에 맞서,
일본종이의 아름다움, 진가를 주장하는 노력을 거듭해왔습니다.
쇼와 58년(1983년), 아베는 일생에 걸쳐 수집해온 귀중한 일본종이의 재료나 수많은
민예품을 보존, 그것을 공개하기 위해 야쿠모쵸에 “(재)아베 에이시로 기념관”을
설립했습니다. 또, 일본종이 기술자 육성을 위해, 부속시설로써 “손뜨기 일본종이
전습소”를 개설했습니다. 현재, 아베 에이시로의 마음과 기술은 손자 신이치로,
노리마사형제의 손에 의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만드는데 있어 쇼와 56년에 고단사(講談社)에서 출판된 야나기하시 마코토
씨의 “일본종이 풍토,역사,기법”을 참고로 했습니다.]



이즈모 민예지가 만들어 질 때까지

이즈모 민예지의 원료는 안피, 닥나무, 삼아(주:인삼의 다른 말) 세종류 입니다.
안피는 시마네반도에서 자생하고있는 것을 사용합니다. 삼아와 닥나무는,
고치(高知)현의 것을 주로 사용합니다. 현재원료는, 가죽으로 된 것을 원료가게에서
구입합니다. 이즈모 민예지의 종이만들기는, 이 세 원료를 단독으로 사용합니다.
안피의 종이는 안피 종이답게, 삼아의 종이는 삼아 종이답게, 닥나무의 종이는 닥나무
종이답게 만드는 것에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종이가 오래갈 수 있도록 원료의
섬유는 상하지 않도록 힘을 다해 처리하고 있습니다.

1. 원료의 먼지를 털어냅니다

しじる しじる

백피(白皮)를 하루동안 물에 담궈, 백피의 상처등을 칼로 떼어냅니다. 백피3장 정도로
한 장의 일본종이를 만듭니다. 이즈모 민예지에서는, 일년간 약 4톤정도를 쓰고
있습니다.


2. 원료를 끓입니다.

    

者熟 者熟

백피를 가마에 넣고, 소다재를 부어 부드럽게 될 때까지 끓입니다



3. 잿물을 빼고 먼지를 없앱니다.

ちりより ちりより

부드러워진 가죽은, 물 속에서 잿물을 빼고 깨끗한 종이로 만들기 위해 가죽에
붙어있는 먼지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떼어냅니다.



4. 원료를 세세히 부숩니다.

ビーダー
ビーダー叩解機

足踏み式うす

가죽을 부숴서 섬유로 만듭니다. 예전에는 봉으로 치는 수타 방식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발로 밟는 절구(足踏み式うす)”로 치는 방법과, “비더고해기(ビーダー
叩解機)”로 부수는 방법으로, 각각 만드는 종이에 의해 방법을 나눠서 쓰고 있습니다.
완성된 종이를 시료(紙料)라고 합니다.


종이의 채색

紙染め

종이를 물들이는 경우에는, 부순 원료를 재차 가마에 넣어 온도를 조절하며 염료와
원료가 잘 섞이도록 젓습니다.

5. 종이뜨기를 합니다.

紙漉き 紙漉き

“스키부네(주: 종이뜨기 작업을 하는 배같이 생긴 작업대)” 안에, 시료(紙料)와 물과
반죽(닥풀이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나오는 점성의 액체) 를 넣고, 잘 저어서 적당한
농도로 만듭니다. 그 위에 종이뜨기 도구인 “종이뜨기 뀀대”와 “종이뜨기 바자”를
사용하여 종이를 뜹니다. 일본종이의 뜨는 방법은 “모음뜨기”와 “흘려뜨기” 의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즈모민예지는 “흘려뜨기”방법으로 종이를 뜹니다. “흘려뜨기”
방법은, 처음에 “끼얹는 물”, 다음으로 “장단 물”, 끝으로 “버리는 물” 이라고 하는
세개의 조작을 합니다. 이러한 공정은 일반의 일본종이의 뜨기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만, 이즈모 민예지의 뜨기법의 다른 일본종이 뜨기법과 다른점은 시료와
반죽의 조화 상태와, 독특한 뜨기법 조작입니다. 즉, 다른 일본종이는 반죽을 잘살려
뜰 때에 뀀대와 장단을 떼어내어 먼지가 남지 않도록 “버리는 물” 을 날려보내지만,
이즈모 민예지의 경우, 반죽을 조금 얇게 하여 뜰 때도 천천히 뜸과 뀀대를 조작하여
물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떠올린 종이를, 젖은 상태로 판자위에 한장씩 겹칩니다. 반죽의 작용으로 종이
사이에 무언가를 넣지않아도 달라붙지 않습니다. 특히, 종이를 뜨는 작업은 어려운
작업이므로, 하루에 250장정도 뜨는데, 전부 같은 두께가 되기까지는 긴 세월 종이를
떠온 장인의 경험과 감에 달려있습니다. 또한, 물도 중요하여 미꾸라지가 살 만한
깨끗한 물이 아니면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6. 물을 짭니다.

圧縮

떠낸 종이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으므로, 위에서 누름돌로 눌러서 “물빼기”를
합니다.



7. 건조 합니다.

板干し 板干し
蒸気乾燥 蒸気乾燥

물빼기를 한 종이를, 한장 씩 벗겨내어 건조시킵니다. 건조는 판에 붙여서 말리는
“천일(天日)건조”와 증기로 달군 철판에 붙여서 말리는 “증기(蒸気)건조”가 있습니다.
만드는 종이에 따라 사용법이 다릅니다.




이즈모 민예지의 원료


안피(雁皮)

がんぴ

서향과의 속하는 다년생의 낙엽저목. 안피의 섬유는 가늘고 길며
강하다. 이것을 이용하여 뜬 안피종이는, 독특한 광택과 차분하고
깊은 멋이 있어, 변색되지 않고 벌레에도 강하며, 물에도 강하여
일본종이의 왕으로 불리운다. 옛부터 영구보존용 기록용지 등으로 쓰였다.
안피는 닥나무, 삼아와 다르게 재배가 어려워 산지에 자생하는
것을 채취하고 있다.


닥나무(楮)

こうぞ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다년생의 낙엽저목. 섬유는 종이의
원료중에서 제일 강하고 길다. 또, 섬유의 엉키는 성질이 강하므로
종이는 강하고 주물러도 튼튼하며,
판화용지,장지, 책의 표지등 넓게 쓰이고 있다. 닥나무 종이는 가장
벌레에 상하기 쉬우나, 현재는 이것을 막는 특수가공도 이루어지고 있다.


삼아(三椏,모시의 일종)

みつまた

삼아는, 안피와 같이 서향과에 속하는 낙엽저목. 삼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세에 들어서부터이다. 섬유는 닥나무에
비하여 섬세하고 광택이 있고, 종이로써는 지폐, 펜서용지,
서적인쇄용 등에 적합하다.